
신작 소설을 쓰기 위해 작가는 파이 파텔을 통해서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어렸을때 여러가지 종교를 접한 파이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동물원을 캐나다로 옮기고 그곳에서 새 삶을 살아가려고 하지만, 태평양 한가운데 배는 풍랑을 만나서 좌초되고 파이만 살아남게 되더군요. 파이가 있는 보트에는 다리가 부러진 얼룩말과 오랑우탄이 있었지만, 같이 있던 하이에나에게 잡아먹히고 그 하이에나마저 더욱 무서운 존재인 벵갈 호랑이인 '리처드 파커'에게 먹히고 맙니다. 모든걸 잃어버린 파이는 살아남기 위해서 리처드 파커와 대립을 하면서도 길들이는 과정에서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지는게, 이번 [라이프 오브 파이]의 줄거리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원작 소설을 안봐서 그런지, 영화 자체가 예상했던것보다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망망대해에서 사람과 호랑이의 우정을 다룬 모험담인 줄 알았는데, 초반부에 여러 종교를 접하면서 신앙과 그에 대한 믿음을 갈구했던 파이가 이성을 강조하는 아버지의 충격 요법때문에 배움에 흥미를 잃은 장면부터 심상치 않더군요. 그리고 바다에서 호랑이와 단 둘이서 살아남기위해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그동안 배웠던 이성은 대자연의 냉혹함에 산산조각나고 가슴속에 담았던 신앙조차도 적지 않게 흔들리는 과정을 126분이라는 제법 긴 러닝타임동안 자세하게 보여줍니다. 이따끔 야생의 본능에 따라 파이를 노리는 리처드 파커의 모습과 바다의 역동적인 모습을 제외하면 대부분 파이의 처절한 생존기를 보여주고 있어서, 중후반에 살짝 지루한감도 없지않아 있더군요. 그래도 리얼 3D로 봐서 바다가 보여주는 대자연의 웅장함이나 초현실적인 신비함이 잘 살아있긴 하더군요.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이라면 역시나 파이라는 인간의 재생과 성장을 잘 보여줬다는 겁니다. 비록 원작 소설을 읽지 않고 봐서 그런지 보는내내 그러한 모습을 보고 이해하는게 어려웠지만, 파이가 대자연과 리처드 파커를 통해서 신앙와 이성을 잃어버리고 좌절하다가 리처드 파커와 같이 망망대해에서 살아남고 미어캣들이 사는 섬에서 본 불가사의한 장면을 통해 그러한 신앙과 이성을 다시 회복하는 장면들이 인상깊더군요. 결말에서 선박 침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러 온 보험회사 직원들을 상대로 자신의 경험담이 전혀 현실성이 없어서 이성으로 판단할만한 이야기로 바꿨음에도 보험회사 직원은 원래 이야기를 가지고 보고서를 썼다는건 감안하면, 영화에서는 이성의 회복보다 신앙 - 그리고 믿음의 회복에 좀 더 비중이 크게 두었습니다. 그래도 미어캣들이 사는 식인섬을 이성적인 판단을 통해 빠져나오고 리처드 파커와의 말없는 이별을 통해서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존재라는걸 인정하는 장면을 통해 이성의 회복도 잘 잡았다고 생각하네요.
아무튼 원작 소설을 보고 봤으면 좀 더 쉽게 더욱 깊게 영화를 이해할 수 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들었고, 설사 그렇다해도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도 2013년 한해를 시작하는데 적절했던 영화라고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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